FILM

카페 뤼미에르

카비리아 2012. 6. 3. 02:59

 


- 일어났어? 배고파 남은거 있어?

- 데워 줄게. 옷도 안 갈아입고 잤어?




 


- 우엉 줄까?

- 응 먹을래. 밥 남았어?

- 응




 


- 있잖아.. 





- 왜?





- 뭔데?





- 나 임신 했어

- 누구야?

- 대만에 있는 애인

- 애인?

- 대만에 자주 가잖아





- 결혼은 안할거야

- 부모님은? 알고있어?

- 응. 하지만 나 혼자서 잘 키울 수 있어








- 결혼은 안할거야

- 안해?

- 응. 자기 엄마랑 너무 친해서 싫어





- 온가족이 우산을 만드는데 만약에 결혼하면 나도 해야할거 아니야. 그런건 못해

- 우산을 만들어?





- 네가 선물로 갖다주던 우산이 그거야?

- 응

- 맞아?

- 응





- 연락은 하고 있어?

- 가끔 전화는 와. 




 

 




너무나도 일상적인 모습으로 흘러가는 장면이라 괜시리 울컥하게 되는 장면. 오랜만에 집에 내려와 늘어지게 자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배가고파 달그닥 거릴 때, 그 소리에 깨어 밥을 챙겨주는 엄마의 모습이나 임신 소식을 알리기 전 뜸들이는 딸을 보며 뭔가 감지한듯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엄마의 기다림이 우리네들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더욱더 의미있게 와닿았던 것 같다. 딸의 임신소식을 듣고 서로 무언가 말하기를 미루던 부부는 딸의 집을 방문하고, 엄마와 딸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입을 뗄 듯 말 듯 아무말 없이 술잔만 들이키는 아빠의 모습 또한 우리네들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이 영화에 극적인 드라마는 없다. 딸이 임신 소식과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지만 그조차도 그저 일상의 한부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찬가와도 같은 이 영화는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와 닮은 점이 많이 보인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 단조롭게 흘러가는 우리네들의 일상을 통해 그 속에 존재하는 관계와 소통을 들여다 보고 그들의 울타리에서 일어나는 약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저항하기 보다 결국에는 그 또한 삶의 한부분으로 받아 들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 아닐런지 싶다. 사실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긴 하지만 샤오시엔이 기존의 화법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다. 샤오시엔의 영화는 원래가 단조로이 흘러가는 인물들의 일상 속에서 그 시대의 한켠을 들여다 보곤 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샤오시엔 영화에서 '공간'은 언제나 큰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카페 뤼미에르 또한 공간안의 인물들을 들여다 보고 있을 뿐 공간을 떠나 인물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인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의 일부가 되어 그들을 살피는 카메라의 시선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보다 우리네 세상 한켠에서의 공기와 시간을 따라감으로써 가공된 삶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그들의 삶을 살피는 듯한 인상을 주며, 위의 장면들 또한 샤오시엔의 이러한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나 있는 장면이었다. 헌데 이러한 샤오시엔 특징 또한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을 받았을 것..

(* 그냥 잡소리 하나 덧붙이자면 샤오시엔의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샤오시엔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얼굴은 도통 기억하기 쉽지가 않다. 배우의 얼굴보다 공간자체에 집중하다보니 사실 배우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음)